세상에 없는 후기

세상에 없는 후기 (2) - 인천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단 1초만에

킬러비 2025. 7. 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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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과 서비스 후기가 넘쳐나는 세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머릿속으로 체험하고 터무니없는 후기를 남겨 봅니다.*

 

 

어스 항공(Earth Air)의 '플래시 포털 (Flash Portal)' 서비스 체험기

 

"단 1초면 지구상 어디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문장인가.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던 물리적 거리의 소멸을 '어스 항공'이 마침내 이뤄냈다는 소식에, 나는 주저 없이 내 모든 휴가와 예산을 이 '플래시 포털' 체험에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내 목표는 단 하나, '지구 반대편에서 점심 먹고 오기'. 목적지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한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다.

 

예약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스 항공 앱에 접속해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하자, '플래시 포털 이용료'라는 항목과 함께 천문학적인 액수가 화면에 떴다.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1초 만의 이동'이라는 가치를 생각하며 과감히 결제 버튼을 눌렀다. 예약이 완료되자 '포털 탑승 전 주의사항'이라는 안내문이 팝업으로 나타났다. '소지품은 가급적 최소화할 것', '탑승 전 3시간 금식',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것'. 마지막 문구가 유독 뇌리에 박혔다.

 

탑승 당일, 나는 인천에 위치한 어스 항공의 '포털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공항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연구소나 미래적인 미술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번잡한 수속 과정은 없었다. 예약 QR코드를 스캔하자 지정된 포털 게이트로 안내받았다. 유리 원통처럼 생긴 기계가 바로 '플래시 포털'이었다. 순백의 공간에 오직 그 기계만이 푸른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내 모든 소지품과 짐은 옆에서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사물 전용 포털로 옮겨졌다.

 

안내 요원은 내게 몸에 딱 붙는 은색 슈트를 건네며 착용을 도왔다. "고객님의 신체 데이터를 원자 단위로 스캔하여 목적지 포털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슈트는 그 과정의 안정성을 높여줍니다." 그의 설명은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슈트를 입고 포털에 들어서자, '웅-'하는 기계음과 함께 눈앞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목적지, 몬테비데오. 전송까지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느껴진 감각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몸이 분해되는 것도,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잠시 '로그아웃'되었다가 '로그인'된 느낌이랄까.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내 앞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한국의 쌀쌀한 가을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따사로운 햇살과 활기 넘치는 스페인어가 나를 맞았다. 몬테비데오 포털 스테이션이었다. 정말, 단 1초 만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스테이션 밖으로 나온 순간, 극심한 '공간 멀미'가 나를 덮쳤다. 분명 내 몸은 몬테비데오에 도착했는데, 나의 뇌와 감각은 여전히 인천의 포털 스테이션을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남미의 해변이 펼쳐져 있는데, 코는 인천 공기의 미세먼지 냄새를 맡는 듯한 착각에 시달렸다. 점심으로 주문한 우루과이의 명물 스테이크 '아사도'는 훌륭했지만, 뇌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김치찌개를 외쳐대는 통에 온전히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후유증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것'이라는 주의사항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다. 육체는 1초 만에 이동했지만, 나의 정신과 기억, 감각의 관성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몬테비데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아, 1초 전엔 분명 내 방이었는데' 하는 생각의 잔상이 계속해서 현실 감각을 방해했다. 심지어는 내가 정말 이곳에 와 있는 것이 맞는지, 혹시 이건 정교하게 짜인 가상현실은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결국 나는 몬테비데오에서 3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귀국행 포털에 몸을 실었다. 다시 1초 만에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안도감과 함께 깊은 허무감을 느꼈다. 지구 반대편을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초. 하지만 그 경험은 내게 며칠 밤낮의 여정보다 더 큰 정신적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총평

 

어스 항공의 '플래시 포털'은 분명 혁신적인 서비스다. 인류의 이동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기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는 '몸'만을 위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이 이 경이로운 속도를 따라잡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부터 도전해봐야겠다. 물론,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먼저 예약한 뒤에 말이다.

 

 

 

서비스명: 플래시 포털

서비스 내용: 어스 항공의 인스턴트 트레블 서비스

평점: 2.5 / 5 (시간 절약 가능, 후유증이 심하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추천 대상: 짧은 시간 안에 해외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 정신적,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하여 '공간 멀미'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 놀이공원에서 '음속 롤러코스터'를 타고 멀미하는 사람이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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