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종영된 미드 - 5 / 카운터파트 (Counterpart)
시즌제 TV 시리즈를 자주 챙겨보는 사람들은 알 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TV 시리즈의 결말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왕좌의 게임의 결말이 얼마나 기대를 빗나갔든, 로스트의 결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했든, 자신이 챙겨보는 TV 시리즈의 허접한 결말을 볼 기회조차 받지 못한 이들과 비교하면 결말을 맺은 시리즈의 팬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한참 보던 시리즈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 종영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런 시리즈는 항상 내 마음속에 아픈 손가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 제일 쓰리고 아픈 손가락 몇 개를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리스트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모든 시리즈들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카운터파트 (Counterpart) / 2 시즌 (2017-2019) / 방송사: Starz
줄거리
베를린에 위치한 UN 첩보 기관의 말단 직원인 하워드 실크는 UN이 평행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를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음모와 위험으로 가득한 첩보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이제 하워드가 믿을 수 있는 건 건너편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하워드뿐이다.
뒷이야기
‘위플래시’, ‘라라랜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J.K. 시몬스가 두 명의 하워드 실크의 역할을 맡았다. 이쪽 세계의 하워드는 UN 첩보 기관의 소심하고 나약한 말단 직원이지만 다정한 인물로 그려지고, 건너편 평행세계의 하워드는 UN 첩보 기관의 유능하고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요원으로 그려진다. J.K. 시몬스는 이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를 별다른 분장도 없이 표정, 대사, 행동만으로 완벽하게 구별되는 두 인물로 표현해냈다.

** 아래에 표시된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를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부분은 건너뛰길 바란다. **
여기서 얘기하는 평행세계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곳이 아니라 30년 전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하나의 세계가 두 개의 평행세계로 분리된 것이다. 1987년에 처음 분리된 이후로 두 세계는 서로 공조하면서 아주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이 두 개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이 발생하면서 양측 세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유일한 통로를 걸어 잠근다.
** 스포일러 끝 **
이 시리즈는 두 개의 평행세계를 두 국가의 외교전과 첩보전을 그리듯 아주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실제로 양측의 특사가 서로의 세계에 넘어와 다양한 외교를 펼치고 첩보 활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대중들은 이런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특히 과거 동서독으로 나뉘어 분단을 경험했던 독일을 배경으로 설정해서 냉전 시대의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를 재현한 점이 흥미롭다. 때문에 회가 진행될수록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든다.


이 시리즈의 압권은 평행세계가 시작된 기원을 소개하는 시즌 2 에피소드 6 “Twin Cities(쌍둥이 도시)”다. 평행세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두 세계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가 이 에피소드에서 차분하고도 매혹적으로 묘사된다. 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인 저스틴 마크스(Justin Marks)는 ‘두 개의 평행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명확하게 답을 주는 지점이 바로 이 에피소드이다. (시리즈를 안 보고 이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모든 것이 이해되니까 기회가 된다면 이 에피소드만큼은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종영
시청자와 평론가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시청률이 저조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Starz는 한참 방영 중에도 제대로 된 홍보조차 안 했다. 시즌 2 최종 에피소드를 방영하기 전에 취소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는데, 몇 개월 뒤에 Starz에서 ‘카운터파트’의 시즌 3 계약을 포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카운트파트는 아주 훌륭한 시리즈였고, MRC(카운터파트 제작사), 저스틴(카운터파트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와도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카운터파트는 너무 복잡하고 남성중심적인 이야기였다. 시리즈 방영을 결정해서 2번째 시즌까지 이어갔지만, 결국 프리미엄 여성 전략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한 시리즈가 다음 시즌을 이어가려면 코어 프리미엄 여성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코어 전략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시즌 계약을 이어갈 수 없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인터뷰가 나온 기사의 댓글에도 ‘프리미엄 여성 전략’이란 게 도대체 뭘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즐비했다.
Starz에서 시즌 3 계약을 포기한 이후, 시리즈 크리에이터 저스틴 마크스는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쪽에 문의하여 시리즈를 이어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도 이 시리즈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 Syfy 채널에서 차 버린 ‘더 익스팬스 (The Expanse)’가 Amazon과 계약하고, Fox에서 차 버린 ‘브루클린 나인 나인 (Brooklyn Nine Nine)’이 NBC와 계약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다.
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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