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SpaceX가 최초의 민간 유인 우주선을 발사했고 ISS와의 도킹도 성공했다. 이번에 발사되는 팰컨 9 로켓과 함께 주목받는 것은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이다. “스타맨 수트 (Starman Suit)”라고도 불리는 SpaceX 수트는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공상과학 및 슈퍼히어로 영화의 의상을 담당한 호세 페르난데스(Jose Fernandez)가 디자인했는데, 그래서인지 실제 공상과학 영화의 의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영화에서 등장했던 우주복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우주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중 하나로, 1968년에 제작됐지만 지금 봐도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은 전혀 어색함이 없다. 몇 년 전에 이 영화 촬영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매됐는데, 완벽주의자였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화면에 보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스턴트맨인 ‘빌 웨스턴’이 입은 우주복에 공기 구멍을 뚫어주지 않았다. 결국 빌 웨스턴은 백팩에 10분 분량의 공기만을 담고 와이어에 매달려 연기를 하다가 공기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큐브릭은 촬영을 계속했다고 한다. 의식을 잃고 내려온 빌 웨스턴은 주변 스탭의 응급조치에 별다른 부상 없이 의식을 회복했다. 큐브릭의 행동에 화가 난 빌 웨스턴은 큐브릭을 찾았지만 이미 큐브릭은 촬영 현장을 떠난 뒤였다고 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강렬한 색깔의 우주복을 입는 것도 흥미롭다.


에이리언 (Alien, 1979)

지금까지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복은영국 의상 디자이너인 존 몰로가 고대 사무라이 갑옷에서 영감을 받아 기초를 디자인했고 프랑스의 만화가 뫼비우스가 묵직한 중장비의 느낌을 더했다. 우주복은 캐릭터별로 색깔이 조금씩 달랐는데 앨런 리플리(시고니 위버)는 흰색, 댈러스(톰 스커릿)는 빨간색, 케인(존 허트 경)은 노란색, 램버트(베로니카 카트라이트)는 파란색을 착용했다. 그런데 이 우주복은 무겁고 움직이기가 불편해서 배우들은 이 우주복 의상을 싫어했다. 게다가 이 의상에는 환기구도 따로 없는데다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주복 내부 온도는 섭씨 37도를 웃돌아 배우들이 기절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그 때문에 간호사가 상주하면서 배우들에게 산소를 따로 공급해줘야 했다.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도 이런 열악한 우주복 의상은 개선되지 않았는데, 우주인 파일럿인 “스페이스 자키(Space Jockey)” 장면을 촬영할 땐 세트가 훨씬 더 크게 보이게 만들려고 실제 배우 대신 아역 배우에게 작은 우주복을 입혀 촬영을 했다. 하지만 아역 배우들도 비슷한 이유로 기절하는 일이 발생하자 그제서야 우주복 의상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스페이스 자키 우주복을 입은 배우 중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데렉 밴린트 촬영감독의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토탈 리콜 (Total Recall, 1990)

자신이 기억을 잃은 첩보원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화성으로 향하는 퀘이드의 이야기.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우주복은 지금 보면 은박지를 두른 것처럼 조잡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언덕에서 구르면서 헬멧 바이저도 쉽게 깨지고 마는데, 우주복만 거론하다면 영화 역사상 가장 약하고 허술한 우주복이 아닌가 싶다. 결말부에 우주복 없이 화성 땅에 던져진 캐릭터의 몸이 끔찍하게 폭발하면서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화성의 낮은 기압 때문에 결국 폐가 파열되어 사망에 이를 수는 있어도 몸이 폭탄처럼 폭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겟돈 (Armageddon, 1998)

‘배드 보이즈’와 ‘더 록’으로 최고 전성기를 맞이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우주로 판을 키운 액션 영화. 애국주의적인 내용 덕분에 NASA 시설에서 촬영 허가를 받았고 개당 천만 달러에 이르는 우주복도 두 개나 빌려 촬영에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영화 속 캐릭터들이 운석을 폭파하는 임무를 띄고 우주로 가기 위해 입는 우주복으로는 NASA의 실제 우주복과는 약간 거리가 먼 거친 느낌의 우주복이 사용됐다. 세로 주름은 에일리언의 우주복과 조금 비슷한데, 유정 굴착 전문가들인 캐릭터들의 거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좀 더 터프한 분위기가 강조된 것처럼 보인다.

레드 플래닛 (Red Planet, 2000)

화성 식민지 개척 프로젝트를 위해 화성으로 떠난 여섯 명의 승무원이 화성에 불시착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미래지향적인 의상을 디자인한 킴 배렛은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내부에는 첨단 기술이 내장되어 있는 우주복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무 섬유로 만들어진 우주복은 요르단의 사막에서 촬영할 때 내부 온도가 섭씨 40도까지 올라 배우들이 크게 고생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발 킬머’만은 1995년에 촬영했던 ‘배트맨 포에버’와 비교하며 우주복을 입는 게 훨씬 편하다고 얘기했다. 배트맨 포에버의 의상을 입으면 고개를 돌릴 수도, 무릎을 움직일 수도,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없었기에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우주복을 입으면 덥긴 했지만, 화성의 혹독한 환경을 경험하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어서 참을만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성 프로젝트 팀의 지휘관인 보우먼(캐리 앤 모스)이 영화 후반부에 입는 우주 유영 수트가 상당히 멋있다.

세레니티 (Serenity, 2005)

2천년 초반에 짧게 방영하고 막을 내린 TV 시리즈 ‘파이어플라이’의 극장판. 우주에서 펼쳐지는 서부 활극의 컨셉처럼 현대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특히 갈색의 색감과 기계적인 액세서리는 서부와 스팀펑크의 느낌을 섞은 듯하다. 영화에서도 TV 시리즈에서 사용한 우주복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낮은 제작비 때문에 다른 영화 속 의상을 빌리거나 구입해서 썼다. 얼라이언스(Alliance)의 군복은 1997년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 제작진으로부터 대여했고, 지금 소개하는 우주복은 1998년 커트 러셀 주연의 ‘솔저’란 영화에서 쓰던 의상을 가져왔다. 단 두 벌만 가져와서 장갑판과 같은 다양한 액세서리를 추가했다고 한다.


선샤인 (Sunshine, 2007)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는 임무를 받고 우주로 떠난 팀의 이야기를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 영화 속에서 태양에 근접해야 하는 임무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황금색 우주복은 대니 보일 감독이 공상과학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독특하게 제작했다고 한다. 깔때기 형태의 헬멧은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사우스파크’의 캐릭터 ‘케니’의 모습에서 착안하여 디자인했다. 실제 인물이 이 우주복을 입고 느낄 폐소공포증을 직접 체험하고 그에 따라 반응할 수 있도록 실제로 배우가 입을 수 있는 버전을 몇 벌 제작했다고 한다.

더 문 (Moon, 2009)

달 기지에서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분위기의 영화처럼 우주복도 미니멀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실제 NASA 우주복과도 흡사하고 별다른 패치도 부착되어 있지 않다. 컨셉트 디자이너이자 특수효과 슈퍼바이저였던 개빈 로터리는 우주 유영 스턴트를 모두 도맡아했는데, 주인공을 연기한 샘 락웰과 체구가 비슷해서 같은 우주복 의상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한국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실내 유니폼의 우측 가슴 부위에는 ‘사랑’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사랑’은 이 달 기지의 이름인데, 이 달 기지가 대한민국과 미국이 합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어졌다는 설정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로도 유명한 던칸 존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당시 한국인과 사귀고 있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에일리언 시리즈를 다시 제대로 부활시키고자 리들리 스콧 감독이 30여 년 만에 다시 연출한 영화. 에일리언 1편의 30년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1편보다 훨씬 발전된 듯한 느낌을 주는데, 우주복도 좀 더 슬림하고 활동하기 편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파란색으로 통일된 우주복은 몸에 딱 달라붙는 형태로 배우들의 체형이 잘 드러난다. 1편의 ‘노스트로모(Nostromo)’ 호는 일반 상업 화물선이고, 이 영화 속 ‘프로메테우스’ 호는 ‘웨일랜드’ 그룹에서 직접 파견한 팀이기 때문에 훨씬 더 세련된 우주선과 우주복을 사용하고 있다는 설정일 수도 있다. 안드로이드인 데이비드도 우주복을 입고 있는데, 데이비드는 인간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아서 굳이 입을 필요 없는 우주복을 일부러 입는다고 말한다.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일본 애니메이션과 괴수 영화의 광팬인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공상과학 영화. 사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수트는 실제 우주에서 사용하는 우주복은 아니다. ‘예거’ 로봇 조종을 위해 착용하는 수트지만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이 리스트에 추가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만큼 우주복도 애니메이션 속의 디자인처럼 아주 매끈하다. 또한 다양한 국가 소속의 ‘예거’ 로봇이 등장하기 때문에 국가별로 다른 디자인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이들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모험. CG 사용을 싫어하고 실제 촬영 가능한 특수효과를 선호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성향처럼 우주복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실적인 디자인을 채택했다. 앤 해서웨이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아이슬란드에서 물 속 촬영을 했는데 낮은 수온 때문에 우주복 안에 드라이 수트를 입고 촬영했다. 하지만 우주복 의상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상태로 물 속에서 장시간 촬영하다가 저체온증을 경험했다고 한다.

마션 (The Martian, 2015)

화성에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가 살아남아 지구로 귀환하는 여정을 담은 영화. 의상 디자이너가 이 영화의 우주복을 디자인하기 위해 실제 NASA 우주복을 조사한 결과 너무 두툼하고 둔해 보였다고 생각했고, 리들리 스콧 감독도 그런 디자인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현실적이면서도 활동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프로메테우스’에서 다양한 연구 자료와 정보를 가져와 썼는데 특히 우주복 디자인에 많이 적용했다고 한다. 일부 실내 장면이나 클로즈업을 제외하고, 주변 환경이나 그린스크린이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주복 헬멧의 바이저(투명 유리)는 완전히 CG로 작업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를 연기한 맷 데이먼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인터스텔라에서도 우주비행사 역할을 맡았는데, 이 두 역할의 우주비행사 복장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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